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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2020) - 취한 일상 속에서 되찾은 삶의 온도

by N-FORMATE 2025. 4. 20.

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2020)

📌 영화 정보 요약

  • 🎬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 🎭 출연: 매즈 미켈슨, 토마스 보 라르센, 라스 란데
  • 📅 개봉: 2020년
  • 🏆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수상
  • 🧾 장르: 드라마, 코미디, 휴먼

🥂 가설로 시작된 술, 인생의 결핍을 마주하다

《어나더 라운드》는 흥미로운 전제로 시작한다.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상태가 가장 창의적이고 사회적이라는 심리학자의 이론을 실험해보기로 한 네 명의 중년 교사들. 그들은 일상에 무뎌지고, 가족과의 소통도 끊긴 채, 지루함과 무기력에 빠진 자신들을 깨우기 위해 ‘적당히 술에 취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실험을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음주 찬가가 아니다. 처음에는 술이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부여하는 듯 보인다. 주인공 마르틴은 수업 중에도 학생들과 소통이 원활해지고, 아내와의 관계도 개선되는 듯하다. 그러나 점차 그 경계는 무너지고, ‘실험’은 통제를 잃는다. 영화는 한순간의 기쁨과 자유 뒤에 따라오는 감정의 잔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무기력의 정체: 알코올보다 깊은 결핍

영화의 중심 인물인 마르틴은 그저 술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인생의 열정을 잃어버렸고, 가정에서는 투명 인간처럼 존재하며, 아이들과의 거리도 멀다. 학생들은 그의 수업을 지루해하고, 동료 교사들조차 그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그는 '살고는 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상태'다.

이런 무기력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는 중년 남성들의 보편적인 위기를 다룬다.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은 줄어들고,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잊혀진 채 살아가는 그들. 술은 그런 현실을 일시적으로 흐리게 해줄 뿐,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말한다. 술이 단지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억눌린 감정과 용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결국 중요한 것은 술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삶을 어떻게 마주하는가이다.

🎭 연기와 인물 묘사: 무너짐 속에서 피어나는 진심

매즈 미켈슨은 마르틴 역을 통해 감정의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올린다. 그는 절제된 표정으로 무기력과 갈망을 동시에 표현하며, 알코올이 점점 그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특히 후반부 그의 무용 장면은 대사 없이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명장면으로 남는다.

함께 실험에 참여한 동료 교사들 또한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각자의 사연과 결핍을 가진 인물로 살아있다. 한 명은 교육자로서의 열정을 잃었고, 다른 이는 아이에게조차 존경받지 못하는 아버지다. 이들은 술을 통해 서로에게 솔직해지고, 오랜만에 웃고, 울고, 살아있는 기분을 되찾는다. 그 모습은 유쾌하면서도 뭉클하다.

🍷 술이라는 장치, 삶이라는 본질

《어나더 라운드》는 술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어떻게 삶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말하는 영화다. 술은 인물들에게 용기를 주지만, 동시에 그들을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중요한 건 술이 아니라, 그들이 놓치고 있었던 ‘삶의 불꽃’이다.

결국 이 영화는 ‘균형’에 대한 이야기다. 무작정 술을 멀리하자는 것도, 마시자는 것도 아니다. 삶 속에 다시 열정을 되찾기 위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를 감수하고 자신을 깨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 변화가 어떤 형태이든, 결국 우리가 다시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중요하다고.

🎨 연출과 음악: 현실과 유희의 리듬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감정의 리듬을 섬세하게 조율한다.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을 가까이 담아내며, 그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 포착한다. 초반의 무채색 톤은 점차 따뜻해지고, 마지막 파티 장면에 이르면 거의 황금빛으로 빛난다.

특히 음악의 활용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술자리에서 흘러나오는 팝송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What a Life"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찬가로 기능한다. 그 음악이 흐를 때, 우리는 마르틴이 단순히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다시 삶에 ‘깨어난’ 것임을 느낄 수 있다.

💬 삶의 취기: 진짜로 마시고 싶은 건 무엇인가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에 취해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아무것도 없이, 맹목적인 일상에 눌려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어나더 라운드》는 술이라는 키워드로 포장된 영화지만, 그 안에는 인생을 향한 무수한 질문이 들어 있다.

결말은 명확하지 않다. 누군가는 이 실험의 실패를, 또 다른 이는 자유의 획득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우리에게 삶에 다시 불을 붙일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술이든, 춤이든, 친구든, 혹은 아주 작은 용기든.

🌟 총평: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어나더 라운드》는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무거우면서도 따뜻하다. 중년이라는 삶의 전환점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자 한 네 명의 남자들. 그들의 술 실험은 결국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철학적 비유다.

삶은 술처럼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동시에 때론 용기를 주고, 감정을 깨우며,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그 모든 것이 끝난 후, 다시 한 잔을 들고 말한다. “어나더 라운드(한 잔 더).” 하지만 그건 단순히 술 한 잔이 아니라, 삶을 다시 마시겠다는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