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정보 요약
- 🎬 감독: 줄리아 듀쿠르노
- 🎭 출연: 아가트 루셀, 뱅상 랭동
- 📅 개봉: 2021년
- 🏆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 🧾 장르: 바디 호러, 드라마, 스릴러
🧬 서사의 전복: 무엇을 믿을 것인가
《티탄》은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그 형식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를 몸소 증명하는 작품이다. 자동차 사고로 머리에 티타늄 플레이트를 삽입한 소녀 '알렉시아'는 성장 후 자동차와의 섹슈얼한 관계를 맺고, 연쇄살인을 저지른 뒤 남장을 하고 사라진다. 그녀는 실종된 소년 '아드리앙'으로 위장한 채, 소방서장 '뱅상'과 함께 기묘한 가족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 모든 전개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다. 처음에는 바디 호러로 시작해, 중반부터는 페이크 신원극, 그리고 후반에는 가족 드라마로 전환된다. 관객은 끊임없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혼란과 몰입을 동시에 겪게 된다. 《티탄》은 이런 서사적 전복을 통해 인간성과 정체성의 본질에 다가간다.
🧠 정체성의 해체: 나는 누구인가
알렉시아는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부정하거나 위조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 성별, 생물학적 상태를 바꾸며 새로운 역할을 살아간다. 영화는 여기서 '정체성'을 고정된 것이 아닌, 유동적이고 구성 가능한 요소로 그린다. 특히 알렉시아가 아드리앙으로 살아가며 점차 뱅상과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은, 성별을 넘어선 인간 대 인간의 연결로 해석된다.
정체성은 사회적 타자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티탄》은 이 질문을 몸의 변형, 위장, 위협, 수용이라는 과정으로 풀어낸다. 알렉시아는 자신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데서 오히려 더 많은 애정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처음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 연기와 신체성: 말보다 육체로
아가트 루셀은 말보다 신체로 연기하는 배우다. 그녀의 표정, 자세, 호흡은 극단적인 설정 속에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는다. 특히 임신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몸을 조이는 장면, 얼굴을 망가뜨리며 신분을 위조하는 장면은 인간의 신체가 얼마나 정치적이며, 동시에 연약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뱅상 랭동이 연기한 소방서장 '뱅상'은 또 다른 측면에서 신체성과 마주한다. 그는 노화, 근육 퇴화, 남성성의 상실이라는 위기를 겪는다. 그리고 아드리앙(알렉시아)을 통해 그는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법을 배운다. 두 사람은 서로의 거짓과 진실을 알면서도 받아들이고, 이 관계는 육체와 감정을 동시에 초월한다.
🔪 바디 호러의 미학: 혐오를 넘은 초월
《티탄》은 다소 극단적인 이미지와 설정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목적은 단순한 충격이 아니다. 영화는 육체에 대한 공포를 통해 우리가 '인간'이라 불러온 기준을 해체한다. 임신한 알렉시아가 기계에서 기름을 흘리며 몸의 변형을 겪는 장면은 섬뜩하지만 동시에 매혹적이다. 생물학적 현실을 넘어서 존재 그 자체가 변화하는 순간이다.
줄리아 듀쿠르노 감독은 이 과정을 '혐오'의 이미지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관객이 그 변화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몸의 파괴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과정이며, 이는 영화 마지막의 출산 장면으로 절정을 이룬다. 그 출산은 공포와 구원의 감정을 동시에 동반한 신화적 이미지다.
🎨 시각적 연출과 리듬: 절제된 폭력, 감각적 파열
감독은 절제된 화면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감정의 폭발을 절묘하게 컨트롤한다. 카메라는 알렉시아를 따라 좁은 공간, 차고, 샤워실, 소방서 등을 떠돌며, 그녀의 감정 변화에 따라 조명을 변화시킨다. 붉은 조명은 위기, 파란 조명은 혼란, 자연광은 감정의 정화를 상징한다.
편집 또한 리드미컬하면서 불규칙하다. 일상처럼 반복되는 장면 속에 불쑥 삽입되는 폭력의 순간은 예측을 불허하며,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음악은 때로는 공포스럽고 때로는 따뜻하게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특히 소방서 남자들과의 댄스 장면은 마초적 공간의 기묘한 해체로 작용한다.
💬 존재의 조건: 사랑은 육체를 넘어
결국 《티탄》은 한 인간이 어떻게 사랑을 배우고, 또 받아들이는지를 말한다. 알렉시아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지만, 뱅상을 통해 관계를 다시 배운다. 그 관계는 출생의 진실도, 성별도, 생물학적 조건도 중요치 않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무조건적인 수용이며, 그 자체로 구원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영화는 사랑이 반드시 정체성을 확인하고, 조건을 따지고, 규범에 맞춰져야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잃고도 사랑을 택한 두 사람의 관계는, 기존의 가족 개념을 재정의하는 새로운 시선이다.
🌟 총평: 장르의 껍질을 찢고, 진실을 낳다
《티탄》은 단지 파격적인 설정이나 시각적 충격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몸, 정체성과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영화다. 줄리아 듀쿠르노는 바디 호러라는 장르를 빌려, 정체성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장 극단적이고 아름답게 풀어낸다.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불편함은 우리 내면에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우리가 늘 외면했던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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